그 언제나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생각하시며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과 10. 4선언의 기치따라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의지는 날이 갈수록 더욱 굳세여지고있다.
근 7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분렬의 비극과 고통으로 우리 겨레가 흘린 피눈물은 그 얼마인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우리 겨레는 6. 15통일시대와 더불어 민족의 전도를 락관하며 신심드높이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리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의 차이에 관계없이 계급, 계층의 리해관계를 뛰여넘어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아래 굳게 단결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위업실현의 근본문제로 보시고 모든것을 여기에 복종시켜나가시였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인 주체68(1979)년 11월 9일 《로동신문》 1면에는 《합작, 단결, 통일로 민족의 출로를 열자》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사설은 발표되자마자 온 민족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정당한 립장》, 《합작과 단결은 조국통일의 담보》, 《민족이 택해야 할 길을 명확히 밝혀준것으로서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에 대한 조선로동당의 확고한 신념과 자신심을 알수 있게 해준다.》 등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의 목소리들이 온 우주를 가득 채우며 울려나왔다.
당시로 말하면 남조선에서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반대하던 《유신》독재자가 사살된 직후로서 남조선군부세력이 외세의 부추김밑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새로운 독재체제를 조작하려고 미쳐날뛰고있던 때였다. 혼란된 정세속에서 남조선인민들은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적단결과 합작을 실현하여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며 외부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주지 말자는것이 사설의 핵이라고 하시면서 사설집필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정세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여도 민족대단결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깊이 감동된 일군들의 얼굴마다에는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갈라진 민족을 하루빨리 통일하실 일념을 안으시고 신문에 나갈 사설 하나까지도 세심히 지도해주시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신 어버이장군님의 그 로고는 지금도 우리 인민의 가슴을 뜨겁게 해준다.
어찌 그뿐이랴.
1980년대에 북남사이에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마련되고 여러 분야에 걸쳐 교류가 실현되는 속에 북남축구경기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축구경기의 명칭을 놓고 누구는 8. 15전에 있었던 《경평축구경기》의 이름을 그대로 쓰자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북남축구경기》라고 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쓰던 《경평축구경기》라는 이름을 그대로 되살려쓰는것은 오늘의 현실에도 맞지 않을뿐아니라 통일의 견지에서 볼 때 통일지향적인 의미가 없고 북남대결을 조장하는 기운만 느껴진다고 하시면서 그 명칭을 《통일축구경기》로 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이 소식에 접한 온 겨레는 《축구경기도 민족이 하나가 된다는 통일의 뜻을 담고 하게 되니 정말 심장이 동하고 눈물이 쏟아진다.》고 격정을 터뜨렸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평양과 서울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와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온 겨레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성황리에 진행되게 된것도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령도의 손길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주체79(1990)년 5월 어느날, 일군들로부터 통일음악회준비정형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회명칭은 범민족적인 성격과 의의를 부여하기 위하여 《범민족통일음악회》로 할데 대한 문제로부터 준비위원회의 조직과 활동방향, 통일음악회에 내놓을 종목과 남조선과 해외동포음악가들에 대한 초청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북과 남, 해외의 음악가들이 그해 10월 평양에서 노래와 춤으로 통일의 새 아침을 부르는 격동적인 화폭이 펼쳐지게 되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 준비위원회 위원장이였던 윤이상선생은 당시 제일 감격하였던 때가 언제였는가고 묻는 《뉴 코리아 타임스》 기자에게 《북과 남의 가수들이 북과 장고를 치며 소리를 주고 받고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기뻐서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다싶이 했다. 45년동안이나 갈망하며 갇혀있던 분렬된 북남이였으나 문화만은 옛그대로 살아있었던것이다. 음악을 통해 피가 흐르는것이다. 북과 남의 음악인들이 서도창을 부르고 남도창도 나와 부르니 그것이 통일이 아닌가. 서로 헤여져살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자마자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여 우리 민족의 얼이 깃든 같은 노래를 같이 부르는것,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라고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였다가 어버이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이 깃든 생일상을 받아안은 남녘동포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와 인정미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인정에 목 말라있는 우리에게 사랑의 생명수를 안겨주신 김정일장군님은 온 겨레가 따르고 받들어모셔갈 친어버이이시다.》라고 웨쳤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를 불러일으켜 민족의 자주적운명개척을 위한 애국애족의 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지금 온 겨레는 위대한 장군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또 한분의 백두산천출위인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힘차게 싸워나가고있다.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은 온 겨레를 통일애국의 한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명한 령도따라 이 땅우에 자주통일의 새 아침을 기어이 안아오고야말것이다.
Fonte: http://uriminzokki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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